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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고된 이웃들에게 희망 사다리가 되고 싶어요"

울산 북구 자활기업 '희망리본 세탁' 서광진 대표

(울산=뉴스1) 김재식 기자 | 2016-05-13 05:36 송고 | 2016-05-13 14:55 최종수정
'희망리본 세탁' 서광진 대표가 세탁물을 건조기에서 꺼내고 있다. 장은진 기자© News1
'희망리본 세탁' 서광진 대표가 세탁물을 건조기에서 꺼내고 있다. 장은진 기자© News1

"일거리를 많이 맡아서 고된 처지의 이웃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지난 4월 1일 울산 북구 화봉동에 문을 연 자활기업인 '희망리본 세탁' 대표 서광진씨(38) 애기다.
자활기업은 저소득층이 서로 힘을 모아 스스로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한 자립 사업을 하는 곳이다.

자활기업인 '희망리본 세탁'도 대표자인 서씨를 포함해 직원 모두가 기초생활수급자들이다

그는 현재 자신과 비슷한 삶의 궤적을 걸어온  직원 4명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다.
기구했던 과거를 딛고 어엿한 자활 기업의 대표로 홀로 선 서씨.

그런 그도 한때는 빠져나오려 발버둥 칠수록 깊이 빠져드는 늪 같은 얄궂은 운명 앞에 절규했다.

그는 "지난하고 고단했던 은둔의 삶에서 빠져나오는데 무려 10년 가까운 세월이 필요했다"고 털어놨다.

여느 또래와 같이 평범하던 그의 일상에 생채기가 나기 시작한 것은 부모님의 불화로부터 기인했다.

유년기 서씨에게 일용직 근로자인 아버지와 동네 미용실을 운영하던 어머니는 돈에 쪼들리며 늘 다투던 기억만 선명하다.

부모님의 잦은 불화는 끝내 이혼으로 끝맺었다. 그는 그때가 중학시절이었다고 기억했다.

그때부터 어머니는 두 살 터울의 서 씨의 형에게 기대와 애착을 보였다.

어머니는 형이 다니는 학교에 수시로 찾아다니며 미래 가장의 장래를 살뜰히 챙겼다.

서 씨는 "아버지가 없는 집에 큰형이라도 번듯하게 자리 잡아야 된다는 생각에 그런 어머니를 이해했다"고 한다.

어느 날 여름, 군복무하던 서 씨 형이 녹내장으로 한쪽 눈이 실명된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어머니는 짐승처럼 울부짓다 집을 나가곤 발길을 끊어 버렸다.

한때 네가족이 단란히 살던 18평짜리 아파트에는 서 씨의 형만 방치되듯 혼자 남았다.

나머지 한쪽 눈의 시력까지 잃어가던 형은 실명 충격에 식음을 전폐해 몸과 마음이 나날이 야위어 갔다.

그 당시 군 복무중이던 서 씨는 휴가 때마다 형을 찾아 손수 음식을 챙기고 용돈을 손에 쥐어주며 삶의 의지를  북돋았다.

강원도 삼척의 험준한 골짜기에서 경계근무로 밤을 새우던 서씨는 "사회에 나가면 돈을 모아 가족들과 다시 함꼐  살겠다고 수없이 다짐했다"고 한다.

제대후 3일만에 서 씨는 곧바로 현대자동차 4공장 사내 협력업체에 취직했다.

휴일을 반납하고 야간 잔업까지 하고나면 매달 급여날 140만원이 서씨 손에 쥐어졌다.

당시 23살이던 서씨 혼자 쓰기에 부족하지 않았지만 형을 부양하고 병수발하다 보니 돈은 모이진  않았다

서씨는 3개월뒤 현대차 인근의 페인트업체인 kcc 협력사로 자리를 옮겼다.

첫날 지독한 휘발성 페인트 냄새로 괴로웠지만 일주일쯤 지나니 그것도 무던해졌다.

그럭저럭 일에 재미가 붙자 별탈 없이 4년을 넘게 다녔다.

울산 북구 화봉동에서 운영중인 자활기업인 희망리론 세탁.  직원들이 모두 기초 생활수급자로  이곳에서 완전한 경제적 자립을 꿈구고 있다. 장은진 기자© News1
울산 북구 화봉동에서 운영중인 자활기업인 희망리론 세탁.  직원들이 모두 기초 생활수급자로  이곳에서 완전한 경제적 자립을 꿈구고 있다. 장은진 기자© News1

하지만 또래 친구들과 술 한잔 편히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늘 곤궁한 처지였던 서씨는 수시로 형을 향해 폭발했다.

어쩌다 술 한잔이라도 과하게 마시면 고함치며 욕하고 대들기 일쑤였지만 형은 말이 없었다.

형이 의가사 제대한 뒤 발길을 끊고 미용실에서 기거하던 어머니는 서씨에게 수시로 손을 벌렸다.

서씨와 다툼도 그만큼 잦았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가 추석을 며칠 앞두고 서씨 형제가 사는 반구동 월세방을 찾아왔다.

정자 바닷가에서 가족끼리 고기나 구워 먹자고 말을 꺼냈다.

서씨 형제와 어머니는 가을 초입의 쌀쌀하던 그날 밤 정자항 몽돌해변에서 도란도란 고기를 구워먹었다.

어머니는 며칠 뒤 말 없이 울산을 떠났다.

아버지의  재혼, 어머니의 가출…그렇게 지키려 애썼던 가족공동체가 허망하게 무너지자 서씨는 인생이 참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즈음 직장을 그만 둔 서 씨는 형과 함께 좁은 단칸방에서 말그대로 두문불출했다. 

살아갈 이유도, 삶의 의지도 없었기에 돈도 벌러 나가지 않았다.

어느날부터 방세가 밀리고 연체된 전기와 가스비 독촉장이 문앞에 그득히 쌓여갔다.

그러자 눈먼 형님이 몸을 추스르고 돈을 벌러 바깥일을 나갔다.

서씨는 이런 형님에 대해 "절대 노가다를 할수 없는 몸인데 노가다를 해서 돈을 벌어왔다"고 했다.

서씨 형제는 방세를 내지 못하던 반구동 월세집에서 쫓겨나 북구 효문동 재개발지역 판자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수년간 집에만 틀어 박혀 지낸던 서씨를 보다 못한 형이 북구 효문동주민센터를 찾았다.

여기서 사회복지직 한동우 주무관을 만나면서 서 씨의 인생은 또 한번 변곡점을 맞는다.

한동우 주무관은 형으로부터 한창 젊은 나이에 수년째 사람과의 관계를 끊고 '폐인'처럼 세월만 보내고 있던 서씨의 사연을 듣게된다.

조건부 수급자로 다소나마 경제적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북구자활센터에서 참여자로 일할 것을 형을 통해 서씨를 설득했다.

한 주무관과 형의 끈질긴 설득끝에 서 씨는 지긋지긋했던 젊은 날의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청산하게 된다.

2013년 북구자활센터 희망리본세탁사업단에서 근무하게 된 서 씨는 주말과 휴일도 없이 일만 했다.

희망리본세탁사업단에서 같이 일하던 다른 직원들이 월 평균 70만원의 급여를 받아 갈때 서씨는 130만원을 가져갔다. 거의 일을 2배 한 셈이다.

서 씨의 이런 성실성은 북구자활센터 참여자들 사이에서 단연 눈에 띄었다.

이를 눈여겨본 북구자활 이영덕 센터장은 아예 희망리본세탁사업단을 자활기업으로 독립해 운영해 볼 것을 서씨에게 권유했다.

기존 희망리본세탁사업단의 사업장과 시설을 북구자활센터에서 무상으로 임대해주겠다고도 제안했다.

10년 가까이 정상적인 삶을 포기한 은둔 생활을 훌훌 털고 일어난 지 꼭 3년 만에 서 씨는 자활기업 대표가 됐다.

북구자활에서는 아직 경영에 서툰 서 씨와 희망리본세탁이 완전히 홀로서기를 할 수 있도록 허동범 팀장을 파견해 물신양면으로 돕도록 배려했다.

희망리본 세탁에 근무하게 된 직원들도 기초생활 수급자로 엇비슷한 아픔을 하나씩 가진터라 대표자 서씨와 쉽게 죽이 맞았고 의기투합했다.

서 씨는 현재 '희망리본 세탁'을 자활기업에서 사회적기업으로 키우려는 꿈을 꾸고있다.

그렇게 되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안정적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사회적 기업의 전 단계인 예비 사회적 기업이 되려면 최소 3개월 이상 꾸준하게 쌓은 거래 실적이 있어야 한다.

이때문에 서 씨는 매일 고된 세탁일을 하면서도 틈틈히 발품을 팔아 영업에 나서지만 실적은 아직 신통찮다.

서 씨는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희망의 사다리가 되겠다는 일념에 새로운 거래처를 찾아 볼 요량으로 또다시 거리로 나서고 있다.


jourl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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